"2-3년 안에 화이트칼라 업무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된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예전 회사에서 "우리 회사는 다르다"를 입에 달고 살던 임원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하는 일은 너무 복잡하고, 맥락이 많고, 역사를 알아야 하고, 사람이 많이 관여되어 있다고. 한동안은 온몸으로 거부하거나 안 보이게 천천히 피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계속 막을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오래도록 사람의 영역으로 남을 거라 믿었던 것마저 내줘야 한다면, 나에게도 2-3년의 기회만 남은 건 아닐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기회가 남아있을까. 이 생각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한다.

AI가 전문직도 대체한다고 한다. 가장 먼저는 회계사다. 표준화가 잘 되어 있고 반복 작업이 많은 직군부터 시작된다. 그 어려운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도 실무를 익힐 회사들이 채용을 줄이고 있다. 변호사도 조금 늦게 따라올 거라는 예상이 많다. 의사는 그나마 마지막일 거라고들 한다. 협회가 강하게 저항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중요한 결정 앞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의사 선생님이 AI보다 믿음이 간다는 심리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른 치과 교정처럼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역은 대체하기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AI는 틀릴 수 있다. 종종 틀린다. 그리고 틀렸을 때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하하"하고 넘어간다. 커리어를 걸고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결정을 그런 AI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 어떤 판단이 옳은지 확인하고,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검증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하는 일이 앞으로 사람의 주 역할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직접 실무를 하는 사람보다, 구조를 설계하고 일을 조율하는 사람이 중요해진다고 한다. 사장도 직접 실무를 하고, 신입사원도 AI 팀원에게는 매니저가 된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AI에게 시키지 뭐"라며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그렇게 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맥락 없이 AI에게 던졌더니 많은 가정을 깔고 만들어준 결과물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면서 시간을 낭비했고, 결국 처음에 원했던 게 뭐였는지도 잊어버렸다. 여러 버전의 결과물을 보면서 망연자실했던 적이 몇 번 있다. 그 이후로는 생각이 필요한 문제는 AI에게 바로 묻지 않는다. 내가 먼저 충분히 생각한 다음에 묻고, 때로는 내가 쓴 버전과 나중에 비교하는 용도로만 꺼내 본다. 그랬더니 AI 답변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미처 생각 못한 부분이 더 잘 보인다. 자기 생각을 자꾸 아웃소싱하면 생각 없는 사람이 되듯이, 매번 AI에게 답을 구하는 사람도 결국 그렇게 된다. 앞으로는 자기 생각과 방향성을 갖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조직에서도 내 방향성을 팀원들에게 빨리 공유할수록 내가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믿고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AI와도 똑같다. 나는 신입 때부터 "왜 하는지"를 알아야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무조건 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항상 왜(why)부터 알려줬다. 나 같아도 궁금할 테니까. AI는 "왜 하나요"라고 묻지는 않지만, "왜냐하면"이라고 배경을 알려주면 확연히 더 잘 해준다. 귀찮지만 맥락을 설명하는 것이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어쩌면 AI를 더 많이 쓰게 되면서 고참 선배들이 MZ 팀원들에게도 배경을 이전보다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문화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기술 도입이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사람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것을 남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조직에 좋은 일임을 알아도, 20년 넘게 일하면서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고 떠나는 팀원을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영업사원 머릿속에 있는 고객과의 대화, 고객이 원하는 것, 제안한 내용을 시스템에 입력하라고 독려하고 보너스를 줘도 기대만큼 되지 않는다. 이 암묵지, 즉 명문화되지 않은 일하는 방식과 스타일, 말 안 해도 서로 아는 문화적 요소들을 AI에게 잘 알려줄수록 AI는 오래 함께 일한 동료처럼 일해준다. 아무리 일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도 회사를 옮기면 몇 달은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이 기획안을 승인받으려면 어떤 논리로 접근해야 하는지, 어떤 표현을 싫어하는지, 자신감이 중요한지 겸손함이 중요한지. 이런 것들을 AI에게 학습시키는 일이 앞으로 조직 내 전문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된다.

서양 기업들, 특히 실리콘밸리 기반 조직들은 업무 방식이 상당히 표준화되어 있다. 문서화가 잘 되어 있고 프로세스가 명확하다. 그래서 AI 도입이 상대적으로 쉽다. 학습시킬 데이터가 이미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은 다르다.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하고, 위계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달라지며, 문서화되지 않은 관행이 실제 업무를 지배한다. 이것이 AI 도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맞춤형 AI 구축의 수요를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 방식대로" 작동하는 AI는 아무나 만들 수 없다. 조직의 맥락을 이해하고, 암묵적 지식을 구조화하고, AI가 그것을 제대로 학습했는지 감독하는 사람의 가치가 앞으로 올라가는 이유다.

AI 시대에 사람에게 남겨지는 역할을 정리하면 세 가지다. 첫째, 도메인 지식을 AI에게 학습시키는 사람. 조직이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명시적으로 만들고,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일이다. 경험이 있어도 이것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일이다. 둘째, AI의 결과물을 감독하고 판단하는 사람. 단순한 검토가 아니라 기준을 설정하고 품질을 유지하는 역할이다. 셋째, AI가 틀렸을 때 책임지는 사람. 가장 단순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가장 무거운 역할이다. AI를 쓸 줄 아는 것과, AI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 차이가 앞으로의 경력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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