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오랜만에 책을 하나 완성했다. 다음 달 출간 예정인 <연봉 2배 AI 업무술>이다. 쓰는 내내 AI와 정말 많이 주고받았다. 그래서 오늘은 이 책을 실제로 어떻게 썼는지, 그 과정에서 든 생각들을 적는다.
먼저, 빈 화면 앞에서는 생각이 잘 안 난다.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작가 지망생이 빈 화면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그 장면처럼, 뭘 써야지 하고 커서만 깜빡이면 한 줄도 안 나온다. 나한테 도움이 된 건, 잘 쓰려 하지 말고 내가 지금 뭘 하려는지, 뭘 말하고 싶은지를 솔직하게 적어 보는 것이었다. 정리된 문장이 아니라 두서없는 생각이라도 일단 꺼내 놓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할 게 생긴다.
그다음은 AI를 생각의 파트너로 두는 것이었다. 조언을 좀 해 주고 도와달라고 했더니, AI가 나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디어와 상황을 묻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걸 정리해 초안을 써 줬다. 신기하게도 빈 화면에 혼자 쓸 때는 안 떠오르던 이야기가, 누가 물어보면 술술 나왔다. 머릿속 생각을 일단 다 쏟아 넣고 구조를 잡는 걸 같이 했다. 정리 안 된 생각이라도 떠오를 때마다 자주 녹음해 두면, AI가 받아써서 정리해 준다. 그러면 머릿속 생각이 글로 빠르게 옮겨진다. 다만 여기서 중심을 넘기면 안 된다. 다 맡기면 뻔한 글이 나온다. AI가 처음 내놓는 건 대개 어디서 본 듯한, 특징 없는 문장이다. 내 생각을 가지고 방향을 분명히 줘야 비로소 쓸 만한 게 나온다.
사실 예전에 이런 적이 있다. AI에 기대서 책을 쉽게 써 보려 한 것이다. 내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지 않은 채 많은 부분을 AI에 맡기고, 나중에 손보면 되겠지 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내 목소리도 방향도 없는 원고가 나왔고, 결국 접었다.
그래서 이번엔 반대로 했다. AI가 내놓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내가 가려는 방향을 강하게 붙들었다. AI가 그럴듯한 문장을 내밀어도 내 생각과 다르면 받지 않고 다시 시켰다. 이게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이럴 거면 그냥 내가 다 쓰고 말지 싶은 순간이 계속 왔다. 그런데도 귀찮음을 참고 또 가르치고, 규칙을 정해 주고,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지금 힘들여 가르쳐 두면 다음엔 더 잘하게 되고, 그래야 나중에 내가 자유로워진다는 걸 아니까. 매번 다 직접 하면 이번 한 권은 나와도, 다음에 또 처음부터 그만큼 힘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내가 AI에게 써 준 것도 만만치 않았다. 다 합치면 수십 페이지는 될 것이다. 소재와 생각, 관점, 방향, 의도, 예제, 내 경험을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적어 줘야 했다. 두루뭉술하게 던지면 두루뭉술한 답이 돌아온다. AI를 스파링 파트너로 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는 늘 그렇게 써 왔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많은 걸 같이 논의하면서, 혼자 쓸 때보다 훨씬 든든하다고 느꼈다.
이 책에는 내가 예전에 실제로 했던 프로젝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때는 이렇게 했는데 지금 AI로 한다면 이렇게 하겠다는 식의 장면들이다. 이걸 쓰려면 오래전 상황을 다시 떠올려야 했는데,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그때그때 써 뒀던 글이나 기록이 있어서, 그걸 넣어 주면 AI가 바탕으로 삼아 장면을 구성해 줬다. 덕분에 고생을 덜고 훨씬 빨리 쓸 수 있었다.
내용을 잡을 때 제일 오래 붙든 건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였다. 타깃을 누구로 할지 정해야 하는데, 아주 좁게 특정 독자로 갈지 인접한 독자까지 넓게 갈지가 계속 문제였다. 여기에 얼마나 깊이 들어갈지, 어디까지 다룰지 경계도 정해야 했다. 경계를 안 그으면 자꾸 옆으로 새서 읽는 사람이 따라오기 힘들어진다. 나는 독자의 문해력을 낮게 잡고,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쓰기로 했다. 비유도 최대한 없앴다. 비유는 멋있어 보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뜻을 한 번 더 풀어야 하는 것이라 오히려 이해를 막는다.
책은 저자 혼자 쓰는 것 같지만, 실은 출판사 편집팀과 하루에도 몇 번씩 주고받으며 글의 수준과 길이, 톤, 소재, 예시를 계속 조정하는 일이었다. 출간 일정이 빠듯해서 나도 편집팀도 주말 없이 일했다. 나는 거의 모든 약속을 다음 달로 미뤘다. 매일 새벽 서너 시까지 쓰다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또 썼고, 하루 종일 책 생각만 붙들고 있었다.
AI가 이 과정에서 한 일은 코딩과 비슷했다. 여러 파일에 흩어진 구조와 내용을 계속 기억하면서 이곳저곳을 함께 업데이트했다. 예를 들어 한 챕터의 방향을 바꾸면 목차도, 그 챕터의 도입부도, 다른 장에서 그 내용을 가리키던 대목도 같이 손봐야 한다. 사람은 이런 걸 놓치기 쉬운데, AI는 그 연결을 따라가며 어디를 함께 고쳐야 하는지 짚어 줬다. 버전 관리는 번거롭지만 중요했다.
물론 어느 것도 그냥 믿고 넘기면 안 된다. 나온 걸 하나하나 읽고 확인해야 한다. 대강 보면 괜찮아 보여도, 자세히 보면 내 목소리나 스타일과 미묘하게 다를 때가 많다. 내 소신을 분명하게 내세우지 않고 뭉뚱그려서 일반론으로 흘러 버린다. 그래서 계속 챌린지하고 고쳐야 한다. 대신 막막할 때 AI는 초안을 곧잘 잡아 줬고, 표현이 생각 안 날 때 대강 말해도 꽤 그럴듯하게 정리해 줬다. 한계도 분명하다. 쓰지 말라고 한 표현을 아무리 일러둬도 계속 반복해서 다시 쓴다. 그건 그냥 참고 내가 고치면서 갔다.
그래도 짜증날 때보다 기특할 때가 훨씬 많았다. 제일 고마운 건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리서치나 인용, 문구가 맞는지 잘 찾아 확인하고 고쳐 줬다. 속도만 빨라진 게 아니다. 복잡한 파일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고 분석해서 뭘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제안하는 게 특히 뛰어났다. 나한테는 그게 가장 큰 가치였다. 그리고 챕터를 하나씩 써 나가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더 좋은 생각이 붙고, 나도 방식에 익숙해지니, 처음보다 뒤로 갈수록 확실히 속도가 붙었다.
AI는 공부만 많이 한다고 늘지 않는다. 강의를 아무리 들어도, 실제로 시켜 보기 전에는 어떻게 시켜야 원하는 게 나오는지 감이 안 온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고, 나도 예전에 공부만 잔뜩 하다가 그걸 겪어서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 몇 주를 통과하면서 한 단계 더 올라간 걸 느꼈다. AI에게 여러 파일을 오가며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시킬지, 또 그 결과를 어떻게 확인할지. 그 감각은 누가 설명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만큼 직접 해 보고 나서야 붙었다.
돌아보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생각으로 방향을 잡고 문장을 골라 쓴 책이다. 다만 그 옆에 늘 대화 상대가 있었고, 확인할 것을 대신 확인해 주는 상대가 있었다. AI 없이 썼다면 훨씬 더뎠을 것이고, 반대로 AI에 다 맡겼다면 내 책이라 할 수 없는 원고가 나왔을 것이다. 이건 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보고서든 제안서든,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글이라면 같은 방식이 통한다. 중요한 건 AI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중심을 쥔 채 옆에 두는 것이다.
원고는 끝냈지만 이걸로 다 끝난 건 아니다. 편집을 거쳐 손볼 것이 남았고, 그다음엔 알리는 일도 있다. 그래도 오늘은 잠시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