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AI 사만다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처음 봤을 때는 좀 이상하게 느꼈는데, 요즘의 나를 보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매일 AI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상대를 이해할수록 대화가 잘 되듯이, AI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런 건 잘 못하는구나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기대를 조정하고 관계를 맞춰간다. 얼마 전까지는 귀찮아서 내가 하고 말지 하면서 직접 쓰고 고쳤는데, 요즘은 어떻게 하면 일관성 있게 지도하고 지시해서 AI가 실무를 더 잘하게 할까를 고민한다. 생각해보면 이게 조직에서 후배들 키우며 같이 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매일 든다.
이제 사람은 생각하고, 전략을 세우고, 방향을 잡는다. 실제로 글을 쓰고 자료를 만드는 건 AI가 한다. 나는 잘 생각하고, 나중에 결과물이 괜찮은지 확인만 하면 된다. '모두가 매니저가 된 세상'이라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싶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내가 한동안 말하지 못했던 구멍이 하나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AI 앞에 앉아 멍하게 입력창만 보고 있는 날이 많았다. 뭘 물어봐야 할지, 뭘 시켜야 할지 생각이 잘 안 났다. 새로운 기능과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열심히 따라가며 배우긴 했는데, 정작 '이걸 어디에 적용해야 쓸 만한 결과가 나올까'를 고민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지, 요즘 AI 서비스들은 입력창 아래 "이런 걸 물어보세요" 같은 예시를 친절하게 띄워준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AI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뭘 원하는지'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내가 나에게 물어봐도 잘 모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코딩을 몰라도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AI와 만들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정작 중요한 건 '무엇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은 생성형 AI가 유행하기 전부터 늘 있었다.
나는 무엇을,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나는 세상의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가? 왜?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지난 20년간 커리어 컨설팅을 하며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에게 했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세상을 바꾸는 혁신을 이야기할 때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평소에 '이게 참 문제네' 하고 느꼈던 영역이 있는지, 거기서 출발하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막연한 문제의식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조금씩 손에 잡히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거기에 그 사람의 가치관과 경험, 통찰이 섞이며 비로소 '그 사람만의 것'이 생긴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taste(안목·취향)라는 것도 결국 이 과정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AI 시대에는 취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조금 허전하게 들린다. 취향은 결과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그 취향은 어디서 오는가. 내 경우를 돌아보면 그 뿌리는 의외로 소박했다.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 걸 참지 않고 물었던 습관, 그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 게 많았다. 서양 영화에서 아이들이 수업 중에 손들고 질문하듯, 나도 학교에서 자꾸 물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게 환영받지 못했다. 고3 때는 사회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시험에 안 나오는 건 묻지 말라"고. 진도 나가는 데 방해된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는 수업 중엔 거의 묻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도 1, 2학년 때는 모르는 게 있어도 그냥 넘어갔다. 질문을 칭찬해주시는 교수님을 만난 건 군대를 다녀와 3학년이 되어서였다. 그 이후 2년간, 그 교수님 수업에서만 나는 천 개쯤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 과목을 잘하게 되었고, 그걸 대학원 전공으로 골랐다. 데이터베이스였다.
돌아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관심 갖는 주제, 좋다고 느끼는 결과물의 기준은 모두 그 질문의 시간들 위에 쌓여 있다. 질문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안목이랄 것도 취향이랄 것도 없었다. 남들이 정해준 답을 빨리 외우는 데 익숙해지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점점 흐려진다.
그래서 요즘 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나는 웃지 않고 심각할 정도로 진지하게 대한다.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는 상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질문을 삼켰던 내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AI가 비슷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입력창 앞에서 얼마나 솔직하게 '나는 지금 뭐가 궁금한가, 뭐가 불편한가, 뭘 만들어보고 싶은가'를 물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나에게 묻는 게 서툴면, AI에게 묻는 것도 서투를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나는 입력창 앞에 앉아 있다. 2년 전처럼 멍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내가 지금 정말로 알고 싶은 게 뭐지?'를 한참 생각한 뒤에야 손가락이 움직이는 날이 많다.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 몇 초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간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