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암묵지를 자산화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나도 오래 같은 고민을 했다. 나는 컨설팅 일을 오래 해 왔는데, 이 일은 규모를 키우기가 어렵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만나는 것부터 쉽지 않은데, 만나더라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다. 유명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으려면 2~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있다. 잠을 잘 때도 돈이 벌리는 사업으로 키우기도 어렵다. 이 고민 끝에, AI로 전문가의 복제본을 만들어 같이 답하게 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4050 전문가가 오래 한 경험을 AI에 넣어 두는 것이다.
직접 만들어 보니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학습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사례가 계속 나온다. AI는 모르는 내용을 만나면 답을 만들어낼 수는 있으나, 내가 그렇게 답했을 것 같은지를 알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테스트였다. 내가 만들고 내가 테스트하니 금방 지겨워졌고, 테스트 케이스가 다양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AI로 테스트 케이스도 만들어서 검증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사람에게 부탁하면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고, 돈을 주고 맡기려 해도 혼을 담아 진심으로 테스트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써 봤다. 글쓰기 분야의 전문가가 만든 AI 서비스도 쓰고, 해외에서 만든 AI 코칭 서비스도 썼다. 잘 만든 것들이었지만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쓰는 동안 이 답이 그 전문가가 직접 했을 답과 얼마나 비슷한지 알 수 없었고, 그게 계속 신경 쓰였다. 나는 복제본의 답이 내 답과 80~90% 이상 같아야 사람들이 믿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정도를 어떻게 재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써 본 사람들이 "와, 거의 진짜 그 사람 같은데요?"라고 몇 명이 이야기해 주면, 그 후에 제대로 측정해서 확인할 수 있겠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런 AI와 이야기하려면, AI가 어이없는 대응으로 실망시키지 않고 성의 있게, 많은 경우 고개가 끄덕여지게 답해서 내 대화 상대로서 수준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질문이 이어지고, 자기 가정이 틀렸다며 왔다 갔다 헤매다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으면, 역시 아직 멀었구나 하면서 AI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던 노력을 중단하게 된다.
그러면 이게 쓸 만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하던 일을 MD 파일로 정리해서 맥락을 많이 넣고 원하는 결과만 정의하면, AI가 방법을 찾아 줄까. 그렇게 나온 결과를 믿을 수 있을까. 새로운 방법론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나는 아직 믿지 못하겠다.
1999년, 거의 30년 전에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국내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식관리 프로젝트를 몇 달씩 두 번 했다. 지식을 현재 상태로 유지하며 계속 활용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프로젝트 때만 활발하다가 몇 년 후에 보면 잘 활용되는 것 같지 않았다. 요즘은 회사 단위의 SSOT(Single Source of Truth, 하나뿐인 기준 정보)를 잘 만들고 현재 버전으로 관리하며 활용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프로그램 소스를 관리하는 방식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서는 확인되지 않은 코드는 소스 DB에 들어가지 못하고, 완전하게 돌아간다는 확인을 거친 뒤에 반영된다. 다만 비즈니스 의사결정은 소스 코드보다 정형화가 덜 되어 있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기계에 주는 코드처럼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고, 이해당사자가 바뀌면 같은 내용의 해석과 전략 방향도 바뀐다. 그래서 SSOT를 어떻게 유지하는 것이 맞을지가 고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가 내 답과 같은지만 볼 것이 아니라, 판단과 그 판단에 이르는 과정, 생각하는 프로세스까지 내 것과 비슷한지 볼 수 있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을 맡으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답을 주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질문을 많이 한다. 어떤 질문으로 상황을 파악했고, 어떤 판단을 했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까지가 내 답이다. 이 생각도 아직 가설이다.
요즘 이 실험을 내 자료로 하고 있다. 4050 개인들도 도움이 필요하고 조직도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내 경우로 먼저 해 보고 조직 단위로 넓혀 보려 한다. 지난 30년 가까이 내가 쓴 메일, 글, 책, 만든 자료를 AI로 정리하고 있다. 이 자료에서 보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어떻게 일해 온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지다. 다른 하나는 그 방식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다. 내가 한 일을 먼저 정리해 봐야, 그것을 한 회사나 팀 단위로 옮기고 상품으로 만드는 방법을 더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요즘 이 분야에서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나는 하나의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서 상황에 따라 더 좋은 효과를 내는 방법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실험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정리한 내용을 AI에 넣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던진 다음, AI가 어떤 질문을 하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내가 직접 읽는다. 이게 내 방식이라고 자신 있게 다른 사람에게 공유할 수 있을 정도까지 해 봐야겠다.
오늘 써볼 것
그동안 내가 만든 자료를 AI에 넣고 정리해 본다. 보고서, 제안서, 메일, 글 중에서 한 묶음을 고르면 된다. AI에게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해 왔는지, 반복해서 쓰는 접근이 무엇인지 정리해 달라고 한다. 나온 내용을 읽고 맞는 부분과 틀린 부분을 표시해 두면, 내 경험을 자산으로 남기는 첫 단계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