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를 너무 무리해서 보냈더니 결국 감기몸살로 이틀을 누워 있었다. 몸이 아픈 건 며칠 쉬면 회복되는데, 회복이 잘 안 되는 건 마음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번아웃이나 현타를 느꼈던 순간들은 몸이 힘들 때가 아니었다. 힘든 일을 어떻게든 버티다가 마음이 흔들릴 때였다.
이번에 그랬다.
최근 개인 고객, 기업 고객 두 케이스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 있었다. 두 케이스의 결은 달랐다. 한 친구는 당분간 스탑하기로 했다. 완전히 끝난 건 아니고 다음 주 되어봐야 다시 진행할지 알 수 있다. 다른 한 분은 계속 가고 계신다.
후자의 경우, 일이 진행될수록 내게 더 많이 의존하시는데 정작 고마움을 표현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거의 매일 몇 시간씩 에너지를 쏟아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필요한 리소스를 연결해드리고, 밤늦게까지 고민 상담을 해드리고, 실무에도 깊이 들어가서 같이 만들어가는데, 그 과정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라는 후회보다, '이러다 내가 힘이 빠져서 계속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더 컸다.
전자의 경우는 결이 다른 무게였다. 딸아이 또래의 젊은 친구였는데, 자기 인생을 바꿀 만한 기회 앞에 서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그 길을 그려보았고, 본인도 의지를 다졌었다. 그런데 막상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순간을 앞두고, 주변의 우려와 걱정스러운 시선들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을까", "지금 이걸 하는 게 맞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사방에서 들려오면, 원래 가지고 있던 확신도 점점 작아진다. 결국 일단 멈추기로 했다.
내가 안타까웠던 건 내 고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런 패턴을 그동안 몇 번 봐왔다. 본인이 정말 원하는 방향이 보이고, 거기까지 가는 길도 그려졌는데, 가까운 사람들의 걱정에 발이 묶이는 것. 그분들의 걱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본인의 진짜 마음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 다음 주에 다시 진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일단 기다리고 있다.
더 마음이 복잡해진 건, 최근 도와드린 다른 고객들은 대부분 잘 풀려서 새로운 길과 해결책을 찾았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고 나도 뿌듯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잘 되는 케이스를 보며 '나도 더 해드릴 수 있겠다'는 마음이 커졌고, 그 에너지를 모든 분들께 똑같이 쏟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비어버렸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진정 남들과 차별화되게 잘하는 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고, 그것도 1:1 대화를 통해 상대의 가치관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혀주는 일인데, 그게 너무 힘들고 자꾸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16년 전 책의 독자들
이 질문 앞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2009년에 출판했던 책의 누적 독자가 3만 명이 넘었다. 그중 천 명까지는 안 되는 것 같지만 수백 명이 내게 책을 잘 읽었다며 궁금한 점을 묻고 도움을 청해왔다. 내 기억으로는 몇 번 빠뜨린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에게 답과 해결책을 보내주었다. 그 답이 짧지 않았다. 어떤 분들은 몇 페이지에 걸쳐 어려운 상황을 풀어놓았고, 나도 거기에 맞춰 구체적으로 답을 써 드렸다.
10명 중 9명은 "고맙습니다"라는 한 줄의 답장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바라고 답을 보내준 게 아니었음에도 '뭐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경우가 늘어가며, 나도 바쁜데 굳이 이런 경험을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아예 답장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구구절절 어려운 상황을 적어 보내온 독자들이 계속 신경이 쓰여서, 결국 답을 다 해주고 답을 했다는 사실을 잊기로 했다. 덕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결의 마음이다. 다만 그때는 책의 독자들이었고, 지금은 시간과 에너지를 훨씬 더 직접적으로, 더 깊게 투입한 고객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졌나 보다.
AI 쪽으로 더 갈까
이번 일을 겪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비즈니스에서 사람과의 대화나 접촉을 줄이고, AI와 더 많이 접촉하며 눈에 보이는 숫자를 개선하는 쪽으로 가는 게 속편하지 않을까. 콘텐츠를 만들고, 시스템을 만들고, 결과를 숫자로 확인하는 일은 적어도 이런 식으로 회의감이 들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 거슬리는 게 있다. 내가 남달리 잘하는 건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잘하는 일과 마음 편한 일이 다를 때,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10년 이상 나를 봐오신 가장 친한 세 분께 이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했다. 세 분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너무 마음 쓰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되, 진정 잘하는 그 일을 놓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본인이 잘하는 일을 단기적인 실망 때문에 포기하면, 결국 자기 정체성을 잃게 된다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도와드린 분들 중 정말 잘 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새로운 길을 찾고, 자기 자리를 잡고, 시간이 지나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오시는 분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에 마음이 더 흔들렸던 것 같다. '잘 되는 게 보통'이라는 익숙함이 깔려 있다 보니, 잠시 멈춘 한 친구와 고마움을 잘 모르시는 한 분이 더 크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결국 이 문제는 '할 수 있는 것 vs.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조화의 문제다.
내가 해드리는 일은 단순히 좋은 질문을 던지고 관점을 넓혀주는 정도가 아니다. 비슷하게 힘든 상황에서 결국 성공한 케이스들을 상세하게 들려드리고, "정말 이걸 해낼 의지가 있는가"를 집요하게 묻고, 굳은 결심을 받아낸 다음, 실제 프로세스에 깊이 관여해서 성공까지 끌고 간다.
그 과정에서 다루는 것은 표면적인 일의 차원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진짜 관심사, 본인이 살면서 만들어온 가치관, 어딘가에서 자신감을 잃게 만든 상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패턴들, 어떤 일에는 의지가 생기고 어떤 일에는 생기지 않는 이유, 성공에 대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의지, 그 사람의 자존심과 자존감까지. 이런 것들을 함께 들여다본다. 그래야 표면의 결정도, 그 뒤의 행동도 본인의 것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이 정도까지 들어가야 본인의 의지로 연결되고 실제 결과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깊이 들어가는 일에는 다른 무게도 따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깊이 관여하고, 의지를 받아내고, 함께 들여다보고, 외부의 흔들림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잡아주는 것. 이 마지막 부분도 내가 자주 하는 일이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주변의 우려에 흔들리는 분들을 다시 중심으로 데려오는 작업. 그런데 이번 경우는 그 잡아줌이 충분히 닿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발은 결국 본인이 디뎌야 하는 것이고, 거기까지는 내가 들어갈 수 없다.
내가 정말 할 수 없는 영역은 따로 있다. 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내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 사람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는지, 함께 만든 결정이 그 사람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그건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이번에 그걸 다시 확인했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을 나는 기본적으로 믿는다. 동시에 나 자신도 꽤 변했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정확히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 다만 큰 계기가 있으면 변하기도 한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 '큰 계기'가 될 수는 없다. 좋은 계기를 만들어드려도, 그것을 본인의 변화로 끝까지 가져가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마지막 한 발을 디디는 것도, 받은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것도, 모두 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대신 가져다 줄 수 없다.
이번에 아프면서 배운 건 결국 이런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좋은 영향을 정성껏 주는 일까지다. 깊이 관여하는 방식 자체는 포기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 영향이 어떻게 변화로 이어지는지, 또는 이어지지 않는지는 내 영역이 아니라는 것. 거기까지 내가 책임지려 하면, 결국 내가 오래 못 간다.
다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다음 주에는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강도를 조절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