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방식으로 커리어 상담을 해주는 AI career advisor를 만들어봤다.
20년 넘게 사람들의 커리어 고민을 듣고 조언해왔다. 2009년에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반복하는 게 힘들어서 책을 한 권 썼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오세요"라고 하려고. 2013년에는 3년간 커리어 컨설팅과 디지털 기획을 본업으로 삼았다. 매번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분명히 도움이 되는데, 내 시간이 유한하다 보니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의 수에 한계가 있었다.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다음에 뭘 해야 할까?", "지금 하고 있는 게 나한테 맞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넘쳐나는데 다 만날 수가 없었다. 이 중요한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2026년, AI가 충분히 발전한 시점에서 궁금해졌다. 기존에 내가 했던 일 중에 이건 AI가 얼마나 잘할까? 커리어 컨설팅 중에서도 본인의 가치관과 재능,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soul searching'에 AI를 적용해 보기로 했다. 내가 하는 질문 방식을 학습시켜서, 내가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경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만들어봤다. 그런데 돌려보니까 뭔가 이상했다.
질문 몇 개만 하고 결론 내지 말라고 했더니 너무 많이, 끝도 없이 묻는다.
처음에 AI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질문 몇 개만 하고 섣불리 결론 내지 말고, 충분히 대화한 후에 결론을 내려보라고. 그랬더니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 귀찮을 정도로. 언제까지 질문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이 정도 물어보고 결론 좀 내려주지"라고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가는 줄 모르나요?", "5년 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길 원하나요?" 무난한 질문들. 하지만 답답한 마음과 관련된 표현하기 어려운 뭔가를 끌어내지는 못하는 뻔한 질문들.
그리고 사람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리듬. 질문이 깊게 와닿았을 때는 잠시 멈춰야 한다. 상대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방금 한 말이 자기한테 어떤 의미인지 씹어볼 시간. 어떤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반응일 때가 있다. 내가 실제 코칭할 때는 상대가 말을 멈추고 생각에 빠져 있으면 기다린다.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잡아주고, 준비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AI는 그걸 모른다. 답이 입력되면 바로 다음 질문을 던진다.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소화하듯. 대화가 아니라 설문조사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요즘 GPT한테 "나 커리어 고민이 있어"라고 말하면 꽤 괜찮은 질문을 해준다. 때로는 놀라운 질문도 한다. 그러면 내가 만든 AI career advisor가 GPT보다 특별한 가치가 있으려면 뭐가 달라야 할까? 질문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언제, 어떤 맥락에서 던지느냐가 달라야 한다. 그건 아직 AI가 잘 못 하는 영역이라는 걸 이번에 분명히 느꼈다.
0.몇 초 만에 얼굴에 스치는 신호를 AI는 받지 못한다.
더 크게 느낀 고민이 있었다. 20년간 사람을 대면하면서 배운 것 중 가장 큰 건 이거다. 사람이 주는 가장 중요한 신호는 말에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정 커리어 방향을 이야기할 때 얼굴에 스치는 미세한 불편함. "괜찮아요"라고 말하기 전 0.몇 초의 망설임. 지금 하는 일을 이야기할 때의 에너지와 옛날에 했던 일을 이야기할 때의 에너지가 확 달라지는 것. 대화를 하고 싶은 건지, 하기 싫은 건지. 내 말에 동의하는 건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0.몇 초 만에 얼굴에 스쳐 지나간다.
경험이 쌓이면 이걸 읽을 수 있게 된다. "아, 지금 내 말을 이해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아, 이 사람이 내 말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구나." "지금 지루하구나." 이걸 느끼면서 그때그때 즉흥으로 대응한다. 관심이 떨어지면 다시 끌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시간을 주기도 하고, 갑자기 상대가 흥미로워할 만한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전부 그 순간의 판단이다.
AI는 입력된 텍스트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글이든 말이든, 글자로 변환되어 입력되는 내용이 전부다. 그런데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고민이 깊은 사람일수록 자기 마음을 잘 모른다. 그래서 고민인 거다. 자기 마음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즉 코칭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AI와의 대화에서 가장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AI가 받는 정보는 전체의 절반도 안 될 수 있다.
나중에는 AI가 카메라를 통해 상대의 표정을 읽고 미세한 감정 변화를 감지하는 기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단계가 아니고, 설령 그 기술이 나온다 해도 표정을 인식하는 것과 그 표정 뒤에 있는 맥락을 이해하는 건 또 다른 수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시장의 기회, 직업적인 정보를 찾고 종합하는 것은 AI가 더 빨리 잘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지지하며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사람이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커리어 코칭에서 어렵지만 진짜 의미 있는 건 이력서 고쳐주는 것도, 면접 준비해주는 것도, 취업 정보를 정리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도 모르고 있는 자신의 잠재력과 의지를 끌어내는 거다.
"돈을 더 벌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실은 "내 일이 의미 있었으면 좋겠어요"를 뜻할 때가 있다. 본인도 그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사람이 실은 정확히 알고 있는데 그걸 입 밖으로 말하기가 두려운 경우도 많다.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거나,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이걸 알아채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서 그 사람이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이끄는 건 플로우차트나 의사결정 트리로 설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리상담과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심리상담보다는 좀 더 커리어에 특화된 영역이다. 정체성과 능력과 미래 방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대화. 이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에너지를 받는지, 어떤 종류의 문제를 풀 때 몰입하는지, 어떤 가치관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지. 이런 것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려면 질문의 기술뿐 아니라 상대가 마음을 열 수 있는 신뢰가 실시간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이번에 AI career advisor를 만들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soul searching이 기술이라기보다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는 거였다.
AI가 커리어 관련 일에 쓸모없다는 건 아니다. 사실 아주 많이 도움된다. 정보를 정리하고, 선택지를 구조화하고, 내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는 수준이 놀랍다. AI는 내가 깊이 파고들면 더 똑똑해지는 advisor 같은 면이 있다. 하지만 정보 처리에서 사람 이해로 넘어가는 순간—상대의 저항을 감지하고, 실시간으로 신뢰를 쌓고, 말하지 않은 것을 읽는 순간—그건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영역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지금은.
이번 경험을 통해 오히려 더 선명해진 게 있다. AI를 활용해서 내 시간의 한계를 확장할 수 있는 부분과, 반드시 내가 직접 해야 하는 부분의 경계. 이 경계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그 조합이 맞을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더 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