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무엇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를 고민해 왔다. 그중 하나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 연결해 주는 일을 하는 이들이 쓸 도구를 만들었다. 채용 의뢰가 들어오면 그 회사와 그 자리를 조사해 브리핑을 만드는 프롬프트, 후보자와 고객사에 보낼 메일과 제안서 양식, 단계별 사용 가이드를 묶었다. 만들 것은 정해졌는데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얼마를 받을 것인가.
AI에게 물었다. 답이 금방 나왔다. 비슷한 상품들의 시세를 훑더니 액수를 하나 제시했다. 온라인 강의가 대개 얼마 선이고 이런 실무 가이드는 그 언저리라는 것이었다. 근거도 있어 보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시장 조사도 AI와 했고 아이디어를 벌리고 좁히는 것도 AI와 했으니, 값도 이 정도가 적정한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 값이 마음에 걸렸다. 왜 걸리는지 바로 말할 수는 없었다. 며칠을 붙들고 있었다.
돌아보니 두 방향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하나는 이걸 만들어 놓고 이만큼 받는 게 맞나 하는 것이었다. 이 값이면 몇 개를 팔아야 하나 세어 봤는데 아득했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였다. 값을 올리면 누가 사기는 하나. 아직 나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두 걱정이 서로 반대 방향인데 둘 다 사실이었다. 어느 쪽으로 움직여도 다른 쪽이 걸렸다. 값이 문제가 아니라 값을 정할 기준이 나한테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정리하고 보니 세 가지가 필요했다.
첫째, 시세
AI가 알려 준 것이다. 쓸모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고민하는 것과, 숫자 하나를 손에 쥐고 시작하는 것은 다르다.
다만 시세가 무엇인지는 알고 써야 한다. 그건 나와 다른 상황에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매긴 값의 평균이다. 시장에 널린 데이터를 모아 가운데를 짚은 숫자다. 그 값이 내 상황에 맞는지는 그 데이터 안에 없다.
둘째, 사는 사람이 이걸로 무엇을 얻나
나는 이 도구를 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안다. 계약 한 건이 성사되면 크게 남는 일이다. 이 도구로 계약을 한 건 더 따낸다면, 사는 사람이 버는 돈은 시세로 매긴 값보다 훨씬 크다. 그렇다면 시세는 이 도구의 값을 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이건 데이터에 없다. 그 업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야 안다.
AI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곧 수긍했다. 시세보다 높은 값도 정당하다고 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안 물었으면 AI는 처음 그 값을 계속 옳다고 했을 것이다. AI가 틀린 게 아니다. 나는 시세를 물었고 AI는 시세를 답했다. 그게 다였다.
셋째, 내가 파는 게 정말 무엇인가
이게 제일 오래 걸렸다.
값을 올릴 방법은 있었다. "이걸 쓰면 계약이 늘어난다"고 말하면 된다. 사는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쓰려다 멈췄다. 그렇게 말하면 계약이 나오는 것까지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고객을 만나는지, 그 회사 사정이 어떤지 나는 모른다. 도구를 잘 만드는 것은 내가 책임질 수 있다. 그 도구로 계약이 나오는지는 책임질 수 없다.
그럼 나는 무엇을 약속하는가. 처음에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세 시간 걸리던 조사를 삼십 분에 끝내 주는 것. 그렇게 보면 아낀 두 시간 반이 값이 된다. 계산은 되는데 값이 초라했다.
그러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를 다시 봤다. 반도체 채용 전문가에게 어느 날 바이오 회사의 채용 의뢰가 들어온다. 어떤 사람이 이 자리에 맞는지, 이력서의 이 경력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대개는 못 한다고 하거나 아는 사람에게 넘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라 아예 못 하는 일이다.
내 도구가 하는 일은 그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세 시간을 삼십 분으로 줄이는 게 아니다. 못 하던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둘은 값을 매기는 방식부터 다르다. 시간을 아껴 주는 물건은 아낀 시간만큼이 값이다. 못 하던 일을 하게 만드는 물건은 그 일로 버는 돈이 값의 기준이다.
내가 파는 건 프롬프트와 양식과 가이드가 아니었다. AI를 써서 하던 일을 더 잘하고, 전에 못 하던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방법이었다.
이걸 알고 나서야 값이 정해졌다. 시세보다는 높다. 사는 사람이 얻는 것으로 보면 여전히 낮기도 하다. 대신 내가 약속한 것과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이 같아졌다. 너무 싼가 너무 비싼가로 며칠을 오가던 것도 그제야 멈췄다.
돌아보면 나는 AI에게 답을 물었는데, 필요했던 건 답이 아니라 기준이었다. AI가 준 값은 틀리지 않았다. 시세라는 기준 하나만 놓고 보면 그 값이 맞다. 기준을 두 개, 세 개로 늘리니 값이 달라졌을 뿐이다. 답이 바뀐 게 아니라 질문이 바뀐 것이다.
이건 값을 정할 때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AI에게 무엇을 물어도 답은 나온다. 근거까지 갖춰서 그럴듯하게 나온다. 그럴듯할수록 그냥 받게 된다. 나도 그랬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일을 AI에 맡기다가, 그 흐름을 타고 정하는 일까지 넘기고 있었다. 조사하는 일과 결정하는 일은 다른 일인데, 넘기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요즘은 답을 받으면 하나를 더 묻는다. 이건 무엇을 기준으로 나온 답인가. 그 기준이 내 상황과 같은가. 다른 기준으로 보면 답이 어떻게 달라지나.
이 질문에는 AI가 대신 답해 줄 수 없다. 내 상황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고, 내가 무엇을 약속할 수 있고 무엇은 약속할 수 없는지도 나만 안다. AI가 아무리 좋아져도 이 자리는 남을 것 같다. 오히려 AI가 알아서 더 많은 일을 이어서 해 줄수록, 처음에 기준을 어떻게 세웠는지에 따라 결과가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값 하나 정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AI가 준 숫자를 그대로 썼으면 그날 오후에 끝날 일이었다. 며칠을 쓰고 나서 알게 된 것은 값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파는 사람인지였다. 그걸 알고 나니 값은 어렵지 않게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