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을 떠나면서 생각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데 익숙한 일만 반복하는 건 아닌가. 그래서 AI 책을 써서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꼬박 일 년을 매달렸고, 150페이지 원고가 나왔다. 그리고 그 원고를 결국 묻었다.
이 이야기의 앞부분은 예전 뉴스레터에서 한 번 했다. 그때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초점을 뒀다. 오늘은 그 뒤에 남은 감정과 거기서 건진 것에 대해 쓴다.
원고를 쓰는 동안 거의 매일 외로웠고 현타가 왔다. 매주 뭔가 새로운 게 나왔다. 화면이 바뀌고, 어제까지 붙들고 있던 고민이 새 기능 하나로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새 발표와 영상을 따라가며 배우고, 써보고, 그 내용을 반영하느라 원고 수십 군데를 쫓아다니며 고쳤다.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분량을 채우려고 AI를 돌렸다. ChatGPT, Claude, Gemini의 여러 모델로 아홉 개의 원고를 얻었다. 얼핏 보면 읽을 만했다. 각 원고에서 쓸 만한 부분을 조금씩 떼어다 내 원고에 붙이고 이리저리 짜깁기했다. 그렇게 나온 건, 나조차 읽기 싫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원고였다. 나는 그 원고를 죽여서 묻었다.
한참을 자책했다. 일 년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책만 붙든 게 아니었다. AI로 무슨 사업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겠다고 해외의 유료 커뮤니티, 유료 강의, 프롬프트, 서비스를 사고 구독하고 써봤다. 돈도 꽤 들였다. 공부라는 이름의 소비만 잔뜩 하고, 정작 내가 의미 있게 생산한 건 없어 보였다. 자괴감이 들었다.
방향이 바뀐 건 큰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을 만나면서였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요즘 뭐 하냐고 물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이 회사에서 겪는 문제가 들렸다. 나도 같이 생각해 봤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버렸다고 여긴 일 년에서 뭔가가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할 때 AI가 어디에 도움이 되고, 어디서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지. 어떻게 시켜야 쓸 만한 결과가 나오고, 어떤 요청에는 그럴듯하지만 알맹이 없는 답이 나오는지. 아홉 개의 원고를 짜깁기하다 실패한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그 감각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도구를 쫓는 일은 끝이 없다는 것, 정작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 그 과정에 AI를 어떻게 붙일 것인가라는 것. 이건 강의로 배운 게 아니라 일 년을 헤매고 나서야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 감각이 지금 하는 일의 바탕이 되었다. 기업의 AI 도입을 돕는 자문, 개인의 커리어 컨설팅. 둘 다 결국 같은 질문을 다룬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는가, 그리고 AI를 그 문제에 어떻게 쓸 것인가. 내가 헤매면서 얻은 답이 남을 돕는 일이 되었다.
책도 그렇다. 이번 주에 두 권의 책을 출간 계약했다. 하나는 AI를 실제 업무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고, 다른 하나는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이 두 권은 내가 기획해서 출판사에 들고 간 책이 아니다. 내가 지난 일 년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출판사 쪽이 먼저 주제를 꺼냈고, 내가 그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성사됐다. 내가 원래 쓰려던 책과는 다른 책이다.
그 계기가 된 건 내 실패담이 아니었다. 일 년을 헤맸다는 이야기만으로 누가 책을 같이 내자고 하지는 않는다. 상대가 본 건, 그 시간 속에서도 내가 꾸준히 잘 알고 잘하고 있던 영역이었다. 헤매는 와중에도 나는 특정 주제들은 계속 파고 있었고, 그 축적이 상대에게 신호가 되었다. 요즘 자주 나오는 이야기, 즉 필요를 먼저 확보하고 거기에 맞춰 제공하는 게 쉽다는 말과 통하는 면이 있다. 다만 내 경우 순서는 조금 달랐다. 필요를 전략적으로 미리 개척한 게 아니라, 내가 계속 관심을 두고 실력을 쌓아 둔 영역이 있었고, 그래서 상대의 필요가 들어왔을 때 맞출 수 있었다.
못 낸 책도 아주 버린 건 아니다. 그 원고는 기업에서 일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는데, 처음 함께 시작했던 공저자와 다시 논의해 살려 볼 생각이다. 아직 이야기를 나눠야 할 단계라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다만 묻었다고 생각한 원고를 다시 꺼내 보게 되었으니, 그때 그 시간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었다.
물론 모든 시간이 알뜰하게 쓰였다는 뜻은 아니다. 더 빨리 방향을 틀 수 있었고, 덜 써도 됐을 돈도 있었다. 그건 지금도 아쉽다. 다만 그때는 낭비로만 보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 다르게 보인다는 것, 그것 하나는 분명하다.
버릴 경험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게 버릴 경험인지 아닌지는 그 순간에는 알 수 없다. 한참 지나서, 전혀 다른 자리에서 쓰이고 나서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