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나중에 꼭 필요할 거야'라며 클릭 한 번으로 자료를 저장한다. 흥미로운 기사, 유용한 템플릿, 인사이트 있는 발표자료들이 구글 드라이브, 노션, Reader에 매일 쌓인다.

그러다 이전에 저장한 자료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넣는다. 바로 나올 때가 많지만 가끔은 너무 많은 결과가 나온다. 일일이 확인하는 것보다 Perplexity나 구글에서 다시 찾는 게 빠르겠다 싶다. 그럼 애초에 왜 저장했나.

나는 매일 정보를 어디에 저장할지 고민한다. 노션, 구글 드라이브, 메일 폴더. 최대한 잘 관리되는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시간을 쏟는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정리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고 정작 읽고 생각하는 데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차라리 패스트 패션처럼 쓰고 버리자고 생각한다.

하지만 며칠 후 또 후회한다. 제대로 정리했더라면 바로 찾았을 텐데. 이 순환이 반복된다.

나는 왜 이리 정보 정리에 집착할까? Second Brain과 PARA 시스템의 Tiago Forte보다는 훨씬 덜하겠지만, 돌이켜보니 나도 그렇게 된 이유라 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대학교 1학년 교양 수업에서 들었던 도서관학 개론에서 듀이의 십진분류법과 미국 의회 도서관 시스템을 배웠다. 도서관들이 수백만 권의 책과 잡지, 논문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 놓았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 후 원하는 정보를 보통 사람들보다 빨리,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분류 체계를 이해하면 검색이 달라진다는 걸 그때 알았다.

대학교 4학년 때 배웠던 데이터베이스 수업은 컴퓨터 사이언스 수업 중 가장 흥미로웠다. 그 해 모 반도체 유통회사의 재고관리 및 검색 시스템을 프로그래밍해서 팔고 몇 년간 계속 유지보수했다. 그 회사는 코스닥 상장사가 되었다.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비즈니스 경쟁력을 만든다는 걸 경험했다.

석사과정에서는 데이터베이스를 전공으로 정하고 한 레벨 더 깊이 들어갔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최소한의 시간에 데이터를 찾고 가져오는 것을 연구했다. 내 연구 주제는 HTML 기반 문서 저장 및 검색이었고 특허도 하나 받았다. 컨설팅 회사에서 일할 때는 두 개 대기업의 Knowledge Management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렇게 정보 저장과 검색을 20년 넘게 공부하고 일도 했는데, 그럼에도 아직도 내 개인 자료 관리는 완전하지 않다. 여러 시스템과 도구를 적용해봤지만 매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답답해한다. 이전에 잘해놨다고 생각했지만 세상도, 내 일하는 방식도 변하니 또 마음에 안 들고 수정해야 한다.

여러 상황에 맞는 완벽한 하나의 도구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못 찾았다. 노션에서 생각을 꽤 써놓고 본격적으로 긴 글을 쓰려고 Google Doc으로 옮기면 이미지가 잘 옮겨지지 않고 포맷도 달라진다. 같은 형식이 아니어도 관련된 파일을 한군데 넣어놓는 게 편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슷한 형식의 자료들, 예를 들어 AI prompt들을 한군데 모아놓고 그 위치를 공유하는 게 좋을 때도 있다.

Claude Project에서 프로젝트 관련 내용을 넣을 때도 텍스트로 import하면 깔끔하고 보기 좋은데 수정할 수가 없어서, 이제는 별도 Google Doc으로 만들어 저장하고 연결한다. 내용을 보려면 별도 탭이 열려서 불편하지만 수정이 편하다. 완벽한 방법은 없고 어디선가 또 타협하게 된다.

구글 드라이브와 이메일, 캘린더, 노션 등 내가 저장해 놓은 자료들을 ChatGPT, Claude, Gemini에 연결했다. 대부분은 원하는 결과를 찾아준다. 하지만 항상은 아니다. 똑같은 질문에 ChatGPT가 잘할 때도 있고, Claude가 잘할 때도 있다. 몇 달 전 이 기능에 감동했다가 결과와 품질이 달라지는 걸 보고 이제는 AI를 의심하고 매번 확인한다. AI가 내 정보를 전보다 훨씬 쉽게 찾아주지만, 그 결과를 다 믿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정리를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ROI가 나올까?

잘 정리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많고 아닌 사람들도 많다. 나는 정보를 정리하면서 우선순위와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는 것처럼, 정보를 분류하다 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일을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을지 더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큰 고민 없이 일단 모아놓은 것도 많다는 것도 깨닫는다. 앞으로는, 도움될까 싶은 건 저장하지 말고 이건 꼭 다시 쓸 것 같다 하는 것만 저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2년 넘은 자료, 특히 기술적인 자료는 과감히 버린다. 2년 동안 변한 세상에 더 이상 맞지 않으니까.

도구가 중요한가, 체계가 중요한가? 새로운 도구가 기존에 생각도 못 했던 일을 하게 해주기도 하니 관심을 안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으로 정리해 놓아야 잊지 않고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을지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아무리 좋은 도구도 체계 없이 쓰면 또 다른 정보의 무덤이 될 뿐이다.

사람들마다 접근방식이 다르니 좋은 선진사례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맞는 완벽한 시스템은 없을 것이다. Tiago Forte의 시스템이 훌륭하지만 내 방식과는 좀 안 맞는 부분도 있고, 내 시스템도 다른 사람에게는 안 맞을 테니까.

ROI는 시간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나처럼 정리하면서 방향성이 정리되면 그것도 큰 Return이다. 정보를 찾는 시간을 줄이는 것만큼 중요한 가치이다.

AI 시대에도 정리는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AI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의도와 방향성의 중심을 잡으려면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AI가 정보를 찾아주고 글도 써줄 수 있지만, 그걸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결국 내가 정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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