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상담을 하다 보면 같은 장면을 자주 본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자기소개서를 보여주는데, 회사 이름만 다르고 문장의 결이 비슷하다. 어디서 본 듯한 문장, 매끄럽지만 사람이 안 보이는 글. 물어보면 대답이 거의 같다. 공고문을 AI에 넣고 자소서를 받아서, 회사 이름 바꾸고 조금 다듬어 제출했다고 한다.
탓하기는 어렵다. 한 친구는 작년에 한 곳 한 곳 며칠씩 들여 자소서를 썼다고 했다. 결과는 서류 탈락의 연속이었다. 정성껏 쓴 서류가 사람 눈에 닿기도 전에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전략을 바꿨다고 한다. 어차피 기계가 거를 거라면, 기계가 쓰게 하고 숫자로 승부하자. 한 시간에 세 곳, 마음먹은 날엔 열 곳씩 지원한다고 했다.
찾아보니 이 친구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분석에서는 기업에 제출된 자소서의 절반 가까이가 생성형 AI로 작성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해외 조사에서는 구직자의 3분의 2가 지원 과정에 AI를 쓴다고 답했다. AI 없이 자소서를 쓰는 사람이 어느새 소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반대편 이야기도 들어 봤다. 인사 일을 하는 지인에게 물으니, 채용 시즌에는 지원서가 수천 건씩 쌓인다고 했다. 검토할 사람은 두어 명이고, 다른 업무와 병행하며 일주일 안에 끝내야 한다. 한 장에 1분씩만 잡아도 며칠이 꼬박 걸린다. 제대로 읽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양이다.
그래서 첫 번째 독자는 사람이 아니다. 지원자 추적 시스템이 직무 요건과 키워드로 서류를 먼저 거른다. 큰 기업들은 여기에 더해 자소서의 'AI 작성 의심도'를 확인하는 도구를 돌리기도 한다. AI가 쓴 것으로 판정되면 감점하거나 떨어뜨리는 곳도 있다. 서류를 통과하면 이번엔 AI 역량검사가 기다린다.
지원자는 AI로 쓰고, 회사는 AI로 거른다. 기계가 만든 서류를 기계가 읽고 떨어뜨리고, 사람은 한참 뒤에야 등장한다. 흔히 "이력서 읽는 데 30초도 안 걸린다"고 하는데, 그 30초는 그래도 사람의 시간이었다. 이제 그 30초마저 기계의 시간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갈래다.
한쪽은 "그럼 AI를 쓰면 안 되겠네"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AI를 안 쓰고 손으로만 준비하는 건, 다들 차로 달리는 경주에 혼자 걸어 나가는 것과 같다. 기업들조차 채용 공고에 생성형 AI 활용 능력을 우대 조건으로 적기 시작했다. AI를 다룰 줄 아는 건 이제 운전면허 같은 기본기다. 다만 AI 작성 여부로 감점하는 곳이 있는 만큼 구분은 필요하다. AI가 쓴 문장을 그대로 내는 것과, AI를 도구로 쓰되 최종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다른 한쪽은 "그럼 AI만 잘 쓰면 되겠네"라고 한다. 이것도 답이 아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함정이 있다.
AI로 자소서를 쓸 때 제일 걱정하는 건 "들키면 어쩌지"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들키는 게 아니다. AI는 그동안 쌓인 수많은 잘 쓴 자소서를 학습해서, 가장 무난하고 안전한 문장을 내놓는다. 모난 데 없이 평균적으로 좋은 글. 문제는 채용이 평균적으로 좋은 사람을 뽑는 게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수백 명 중 기억에 남는 한 명을 뽑는 게임이다. AI를 잘 쓸수록 글은 남들과 비슷해지고, 비슷한 서류는 떨어진다. AI를 능숙하게 쓸수록 더 안전하게 탈락하는 셈이다.
한 친구가 한 시간에 세 곳씩 만들어 내는 자소서는, 같은 공고에 지원한 다른 수백 명도 같은 속도로 만들 수 있다. 같은 도구에 같은 공고문을 넣으면 비슷한 답이 나온다. 인사담당자들이 "요즘 자소서는 다 비슷비슷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 비슷함은 지원자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같은 도구가 같은 평균을 향해 가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면 서류 단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면접에서 잘하라는 조언은 많지만, 현실은 대부분 면접까지 가지도 못한다. 승부는 사람을 만나기 전, 서류에서 이미 갈린다. 평균에서 벗어나는 한 문장이 있느냐 없느냐다.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공고문을 AI에 넣어 초안을 받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초안에 AI가 모르는 것을 집어넣는 것이다. AI는 당신이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에서 진상 손님을 어떻게 다뤘는지 모른다. 동아리 회계 장부의 구멍을 어떻게 찾아냈는지도 모른다. 지원하는 회사의 어떤 제품을 왜 직접 써 봤고 무엇이 아쉬웠는지도 모른다. 이런 구체적인 경험과 거기서 나온 자기 생각을 한 문단이라도 직접 써 넣으면, 평균을 향해 수렴하던 글이 그 지점에서 갈라진다.
다만 한 가지를 놓치면 안 된다. 독특한 경험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읽는 사람이 궁금한 건 당신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게 우리 회사에 무슨 쓸모가 있느냐다. 야간 아르바이트에서 진상 손님을 다룬 경험은 그 자체로는 한 줄짜리 일화지만, "그래서 까다로운 고객을 응대하는 이 직무에서 이렇게 하겠다"로 이어지면 비로소 상대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로 바뀐다. 내 경험과 강점을, 그 회사가 지금 풀고 싶어 하는 문제에 연결하는 것. 이 매칭이 서류에서 가장 강력한 전략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에 눈길을 준다. 채용도 결국,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줄 사람인가를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키워드를 맞춰 기계를 통과하는 건 입장권일 뿐이고, 입장권을 받은 다음 사람의 눈에 걸리는 건 바로 그 연결이다.
그렇게 서류에서 살아남은 사람만 면접장에 선다. 거기서 받는 첫 질문은 대개 비슷하다. "자소서에 쓰신 이 경험, 조금 더 얘기해 주시겠어요?" 어떤 AI도 이 질문에는 대신 답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서류에 쓰는 모든 문장은 면접 질문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AI가 써 준 멋진 문장이라도 내 입으로 3분을 설명할 수 없다면 지우는 게 낫다. 직접 겪은 일로 채운 서류는 통과율만 다른 게 아니라, 통과한 다음 면접에서도 할 말이 차고 넘친다.
상담을 하다 보면 두 부류의 친구가 보인다. 숫자로 승부하던 친구들은 서류 통과율이 조금 올라도 면접에서 막힌다. 자기 서류에 자기가 없으니 할 말이 없다. 반대로 회사 수를 줄이고 한 회사의 사업과 문제를 파고든 친구들은, 서류부터 면접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다르다.
도구가 사람을 대신해 주는 듯 보이는 순간일수록, 그 도구가 흉내 낼 수 없는 게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AI가 평균을 만들어 주는 시대에는, 평균에서 벗어나는 일이 오히려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무난한 쪽을 택하면 안전해 보이지만, 그 안전함이 곧 남들과 똑같아지는 길이다. 그 안에 숨지 않고 자기만의 경험을 드러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가 상대에게 쓸모 있는 가치로 이어질 때, 비슷비슷한 서류 더미에서 결국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