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생산성을 높여줄 거라는데, 우리 팀에서는 왜 효과가 없을까요?"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도구가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도구 이전의 문제다.
내가 오랫동안 대기업을 들여다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혁신이 실패하는 조직에는 꼭 이런 사람이 있다.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다. 회의에서 "AI도 써봐야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사실 이런 생각이 있다.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만 별 탈 없으면 된다."
적극적으로 막는 게 아니다. 그냥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AI든 과거의 디지털 전환이든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지나가는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으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고 본다. 그 사이 자신이 조직에서 쌓아온 영향력, 인간관계, 정보 독점—이것들이 진짜 자산이라고 믿는다.
새 인재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
그래서 AI를 잘 다루는 새 인재가 들어와도 이상하게 자리를 잡지 못한다. 노골적인 방해가 아니다. 중요한 회의에서 살짝 배제된다. 임원들끼리 만나서 잘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눈 후에도, 실무자 레벨로 내려가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어렵다며 진행이 안 된다. 예전에 그렇게 꼼꼼하게 챙기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미안한데, 깜빡했어요" 하거나 "한 번 더 검토가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한다. 핵심 정보가 조금 늦게 전달된다. 성과를 낼 수 있는 소중한 타이밍이 그렇게 조용히 사라진다. 오래된 기득권자들은 이걸 방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이 문제가 개인의 심리에서만 비롯된다고 보면 절반만 맞다.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도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를 들여다보면, 조직 구조 자체가 이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만들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조직이 커지면 CEO 바로 아래 임원들조차 자기 조직의 평가지표와 이해관계에 맞춰 움직인다. 겉으로는 협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는 회사 전체보다 자기 조직에 유리한 방향을 택한다. 그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결국 CEO에게 올라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회사 밖 일도 많은 CEO는 내부를 빠르게 파악하고 결정을 도와줄 측근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CEO 곁에서 오래 머물며 그의 생각과 스타일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들은 의도하든 아니든 CEO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주게 된다. 그렇게 실세가 만들어지고, 예산과 사람의 배분 권한이 그들 손에 모인다. 바른 말을 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것과 조금씩 멀어진 결정이 내려지기 시작하고, 조직 전체의 노력은 파편화된다.
외부에서 영입한 인재가 결국 떠나는 이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외부에서 검증된 인재를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초반에는 기대가 크다. 그런데 2-3년 안에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압박 속에서, 조직 내 정치적 기반이 없는 외부 인재는 본격적인 성과가 나오기 직전에 시간이 다한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다시 새로운 인재가 영입되고, 패턴이 반복된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고 조직을 조금씩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짜 혁신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유는 단순하다. 혁신 의제가 CEO의 책상 위에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창업자나 오너가 새로운 프로젝트에 전념하며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면, 전문경영인은 단기 실적 압박 속에서 장기 혁신보다 연구개발 인력 감축 같은 단기 재무 성과를 선택하기 쉽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서서히 무너진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 패턴은 반복된다.
그래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결국 이 문제는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리더십의 문제다.
첫 번째는 리더가 직접 도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일을 모르는 상사는 팀원이 대충 해와도 알아채지 못했다. 반대로 일을 직접 아는 상사는 속이기 어려웠다. AI도 다르지 않다. 매니저가 직접 AI를 써보고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 알아야, "AI로 해봤는데 별로예요"라는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도구를 모르는 리더는 방해를 눈치챌 방법이 없다.
두 번째는 혁신을 누가 챙기느냐의 문제다. 중요한 의제일수록 조직의 대장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중간 어딘가에서 조용히 희석된다. 위임은 할 수 있어도, 관심을 위임할 수는 없다.
좋은 아이디어가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조직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AI가 정말 중요하다면, 조직의 대장이 그것을 가장 중요한 어젠다로 직접 챙기고 있는가. 그리고 한 사람의 판단과 측근의 의견에만 의존하지 않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한 어떤 장치와 구조를 갖추고 계속 보완해 나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