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러 기업 리더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 "왜 우리 구성원들은 인공지능을 충분히 쓰지 않을까요? 회사가 비싼 라이선스도 다 사주고 교육도 시키는데, 왜 업무에 AI를 적극적으로 적용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 답답함이 충분히 이해된다. 좋은 도구를 손에 쥐여줬는데 활용을 안 하니, 경영진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회사들은 모든 업무에 AI 사용을 강제하다시피 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매주 AI 사용 현황을 보고하게 하고, 어떤 업무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사례를 공유하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진짜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보여주기식 대응으로 끝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상황을 보다 보면 자꾸 다른 장면이 떠오른다. 자녀가 공부를 안 한다고 답답해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부모는 안다. 지금 이 시기에 공부 습관을 들여놓으면 나중에 인생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좋은 책을 읽으면 사고가 얼마나 깊어지는지. 그래서 좋다고 생각하는 책들을 한꺼번에 사다 안기고, 좋다는 학원을 찾아 등록시키고, 친한 어머니들과 정보를 나누며 아이의 일정을 채운다.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아이가 정말 그 가치를 느끼고 스스로 공부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부모가 보고 있으면 책상에 앉아 있고, 안 보면 휴대폰을 본다. 시험이 끝나면 그 많던 학원 내용은 머릿속에서 빠르게 사라진다. 부모는 또 답답해한다. "이렇게 좋은 걸 왜 활용을 안 하지?"
회사에서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느끼는 답답함과, 집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느끼는 답답함은 본질적으로 같다. 내가 보기에 너무 좋은 것인데, 상대가 그걸 알아보지 못하거나 알아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
내가 종종 생각하는 건, 회사 같은 조직에서 리더와 팀원 사이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 관계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팀원들을 길러내고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좋은 리더일수록 그런 마음이 더 강하다. 그 마음 자체는 귀하다. 다만 그 마음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방법이 잘못되면 마음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돌이켜봐도 그랬다. 한때는 후배들에게 그 분야의 가장 좋은 책 다섯 권을 한꺼번에 추천하곤 했다. '이걸 다 읽으면 정말 도움이 될 거야'라는 마음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렇게 안긴 책들은 대부분 책장에 꽂힌 채로 끝났다.
반면 그 사람이 어떤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이 부분은 이 책 한 권에 잘 정리되어 있어"라고 한 권만 건넨 경우는 달랐다. 며칠 안 가서 "그 책 정말 도움 됐어요"라는 연락이 왔다. 어떤 후배는 그 한 권이 계기가 되어 그 분야로 진로를 바꾸기까지 했다.
차이가 무엇이었는지 한참 후에 알았다. 사람은 자기가 준비되었을 때, 자기가 원한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무언가를 받아들인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밀듯이 주면 부담이 되고 거부감이 생긴다. 그래서 이제는 좋다고 생각되는 자료들을 한꺼번에 보내지 않는다. 그 사람의 상황과 준비된 정도에 맞춰서, 필요로 할 때 하나씩 전달한다.
하지만 무조건 기다릴 수만도 없다. 회사에서 리더에게는 사업의 속도가 있고 경쟁이 있다. 부모에게는 흘러가는 아이의 시간이 있다.
요즘 들어 더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구성원들도 자녀들도 투자수익률(ROI)을 생각한다는 점이다. 내가 이 노력을 했을 때 정말 의미 있는 결과가 돌아오는가. 헛수고하는 것은 아닌가.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그렇다. "묵묵히 따라오면 나중에 좋은 일이 있다"는 말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약아져서가 아니라, 그동안 어른들의 그런 약속이 너무 자주 지켜지지 않는 것을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이 직접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말로 "AI가 얼마나 좋은데"라고 강조하는 것보다, 같이 앉아서 본인의 실제 업무를 한 번 AI로 처리해보게 하는 것. 옆자리 동료가 한 시간 걸리던 일을 십 분 만에 끝내는 모습을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떻게 한 거예요?"라고 묻게 되니까. 그 순간이 진짜 변화 관리의 시작이다.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부모가 책에 몰입한 모습을 옆에서 보거나 몇 페이지라도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눠보는 것. 그 한 번의 경험이 수십 번의 강조보다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내 말이 맞지?"라고 확인받으려는 마음이다. 같이 해보고 효과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욕구가 올라온다. 그 한 마디 때문에 상대는 자존심이 상하고, 자기가 스스로 발견했다는 느낌을 잃는다. 주인의식이 사라진다. 그러면 다시 안 한다.
요즘 이 주제를 자주 생각하는 이유는, 나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권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다고 생각해서 권하는 마음과, 그것이 상대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방식인가 하는 고민은 늘 같이 간다. 마음이 앞서면 강요가 되고, 너무 뒤로 빠지면 무관심이 된다. 그 사이 어딘가의 균형을 매번 다시 찾아야 한다.
좋은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무시하고 떠밀듯이 시키는 대신, 본인이 직접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작은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본인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서는 것.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가장 오래가는 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