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을 뽑는다면서 경력을 원해요."
한 취업 박람회에서 어느 졸업생이 했다는 이 말을 요즘 자주 떠올린다. 한 문장 안에 모순이 들어 있다. 신입은 경력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 신입 자리에서 경력을 요구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채용 시장은 지금 정확히 그렇게 돌아간다.
이 모순에 시장이 붙인 이름이 있다. 중고신입. 다른 회사에서 일해 본 사람이 신입 공고에 다시 지원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요즘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는 사람 열 중 서넛은 이미 다른 데서 일해 본 사람이라고 한다. 기업이 가장 원하는 신입은, 사실 다른 회사에서 한 이 년쯤 일해 본 사람인 셈이다.
처음 출발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답이 안 나오는 구조다. 경력이 없으면 안 뽑히는데, 안 뽑히면 경력을 쌓을 데가 없다. 상담에서 만난 한 친구가 그랬다. 졸업하고 반년 동안 백 군데 가까이 넣었는데 면접까지 간 곳이 두 곳이라고. 서류를 대충 쓴 것도 아니었다. 자기소개서를 보여 주는데 정성이 들어 있었다. 문제는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첫 칸이 사라진 사다리를 맨 처음으로 오르려 하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그 친구에게 필요한 건 더 좋은 자소서가 아니라, 시장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일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멀지 않은 과거에는 봄가을이면 대기업들이 일제히 공고를 내고, 수만 명이 같은 날 시험을 치르고, 합격자들이 연수원에 동기로 입소했다. 공채라는 제도였다. 공채의 약속은 단순했다. 회사가 백지 상태의 신입을 대규모로 뽑아 몇 년에 걸쳐 가르친다. 당장 쓸모가 없어도 괜찮다, 들어오면 키워 준다. 그 대가로 회사는 충성과 적합을 얻는다. 이 약속이 70년 가까이 한국 채용의 표준이었다.
그 표준이 표준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있다. 4대 대기업 그룹 중 정기 공채를 아직 유지하는 곳은 한 곳뿐이다. 나머지는 지난 몇 해 사이 차례로 직무별 수시채용으로 넘어갔다. 올해 한 경영자단체 조사에서도 수시채용만 한다는 기업이 절반을 넘어 가장 많았고, 공채만 고수하는 기업은 열에 하나 남짓이었다. 공채가 사라진 건 아니다. 몇몇 그룹과 금융권, 공기업은 여전히 정기 채용을 한다. 다만 시장의 무게중심은 이미 옮겨 갔다.
수시채용은 공채와 정반대의 논리로 움직인다. 결원이 생기거나 새 일이 시작될 때, 그 자리에 필요한 사람을 그때그때 뽑는다. 단위가 "신입 삼백 명"이 아니라 "데이터 분석 한 명, 해외 영업 두 명"이다. 기준도 잠재력이 아니라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는가"다. 교육할 시간은 없다. 와서 바로 일할 사람을 찾는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신입 자리에서도 경력을 찾게 되는 그 모순에 도달한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일관된 계산이다.
기업을 탓하기 전에 그 계산서를 들여다보면 이해되는 구석이 있다. 신입 하나를 제 몫 하게 키우는 데는 시간과 돈이 든다. 그 전제는 키워 놓으면 오래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을 오래 다니지 않는다. 청년 상당수가 첫 직장을 몇 해 안에 떠나고, 평균 근속은 길지 않다. 키워 놓으면 나간다는 계산이 서는 순간, 처음부터 다 자란 사람을 사 오는 쪽이 합리적이 된다. 중고신입 선호는 기업의 변심이라기보다 깨진 약속에 대한 응답에 가깝다. 신입이 회사를 빨리 떠나는 것과 회사가 신입을 안 키우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면서 결과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이 다시 중고신입이 되어 신입 시장으로 돌아오고, 진짜 처음인 사람과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사다리의 첫 칸은 그렇게 한 번 더 좁아진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졌다. 신입이 맡던 일, 자료 조사나 회의록 정리나 보고서 초안 같은 일은 공교롭게도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한 미국 대학 연구진의 분석에서도 AI를 많이 쓰는 직군일수록 갓 졸업한 신입의 자리가 먼저 줄었다. 경력자 자리는 그대로인데 신입 쪽에서만 표가 났다. 다만 균형은 잡아 두는 게 맞다. 이 모든 게 AI 때문은 아니다. 공채는 AI가 오기 전부터 줄고 있었다. 사다리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고, AI는 그 해체를 앞당기는 쪽이다.
이 이야기를 비관으로만 들을 필요는 없다. 진짜 중요한 건, 기업이 중고신입에게서 무엇을 사는가다. 자세히 보면 정규직 경력 증명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검증받으며 일을 해봤다"는 증거다. 이게 핵심이다. 검증의 증거는 정규직 경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턴이든 계약직이든 짧은 스타트업 경험이든, 직접 굴려 본 작은 프로젝트나 채널이든 된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해봤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일로 어떤 결과를 만들었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말할 수 있는 형태로 남기는 것이다. 같은 경험도 어떻게 남기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했다"는 한 줄짜리 이력이지만, "주말 새벽에 매출이 빠지는 패턴을 발견해 발주 시간을 바꿨더니 폐기가 눈에 띄게 줄었다"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은 시간을 때운 기록이고, 뒤는 문제를 발견하고 손을 대 결과를 바꾼 기록이다. 시장이 경력이라고 부르며 사려는 건 후자다. 거창한 자리가 아니어도 된다. 작은 일이라도 "내가 무엇을 바꿨는가"로 말할 수 있으면, 그게 검증의 증거가 된다. 앞의 그 친구에게 내가 권한 것도 자소서를 더 다듬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거쳐 온 작은 경험들을 이 형태로 다시 꺼내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첫 직장을 고를 때 "어느 회사에 들어갈까"보다 먼저 던질 질문은 "어떤 일로 경력을 시작할까"다. 공채 시대에는 회사가 직무를 정해 줬지만, 지금은 한번 시작한 직무가 다음 자리의 발판이 되고 그 경력이 쌓여 몸값이 된다. 그러니 원하는 회사에 곧장 못 들어갔다고 멈춰 있기보다, 그 일과 가까운 자리에서 먼저 경력을 시작하는 편이 낫다. 이름이 덜 알려진 회사의 인턴이든, 작은 팀의 계약직이든, 검증된 경험을 빨리 쌓을 수 있는 자리라면 그게 다음 한 칸이 된다. 신입을 뽑는다면서 경력을 원하는 시장은, 뒤집으면 검증된 경험만 있으면 어디서 시작했든 본다는 시장이기도 하다. 큰 회사의 정규직 한 칸만 바라보며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덧붙이면, 이건 첫 직장을 구하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력을 옮길 때도, 회사 밖에서 내 일을 시작할 때도, 간판이 문을 열어 줄 수는 있어도 남는 건 무엇을 바꿔 봤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