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에이전트, 에이전트 말이 많았지만 솔직히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2026년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Claude의 코딩이나 업무 자동화 도구들이 부쩍 쓸 만해졌고, OpenClaw 같은 것도 등장했다. 자기 컴퓨터에 깔아두고 메신저로 "이것 좀 해줘" 하고 던지면 알아서 이메일을 보내고 일정을 잡고 파일을 정리한다. 작년까지 말로만 하던 AI가 이제 진짜로 손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도구가 이렇게 진짜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도, 정작 회사들은 잘 안 바뀐다고 한다.

연초에 떠돌던 통계 하나가 계속 머리에 남았다. MIT에서 나온 보고서인데, 기업들이 생성형 AI에 그렇게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95%는 손익에 측정 가능한 효과를 못 봤다고 한다. 처음엔 역시 거품이었나 싶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왜 실패했냐였다. 보고서가 짚은 원인은 모델 성능도 규제도 아니었다. 도구는 깔았는데 일하는 방식이 안 바뀐 것. 한 제조업 임원이 했다는 말이 정확했다. "링크드인에서는 다 바뀌었다고 하는데, 우리 현장에서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이 풍경이 나는 낯설지가 않다. 회사 다닐 때도 그랬다. 새 도구가 들어오고, 교육을 하고, 다들 좋다고 하는데, 6개월 뒤에 보면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다. 도구가 문제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문제는 늘 사람과 조직, 그리고 일 그 자체였다.

측정하는 방식부터 좀 이상하다. 회사는 돈이 들어간 것, 줄어든 비용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센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잘 안 잡힌다. R&D나 직원 교육을 생각해보자. 당장 손익계산서에는 비용으로만 찍히지만, 그게 만든 가치는 몇 년 뒤에야 흐릿하게 나타난다. 안 보이지만 중요한 데 투자하는 일은 원래 측정이 어렵고, 그래서 자꾸 뒤로 밀린다.

요즘은 한발 더 나간 주장도 나온다. 줄인 시간 같은 건 진짜 성과가 아니고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ROI를 따져야 한다는 거다. 일리가 있다. 그런데 나는 좀 헷갈린다. 직접 벌어온 돈만 성과인가. 사람의 작업 시간이 줄어든 것도 결국 비용 절감이고, 그것도 엄연한 성과 아닌가.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더 헷갈린다. 일을 사람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하게 되면, 시간이 줄었다는 게 여전히 성과일까. 사람의 시간을 줄인 것과 AI의 토큰을 줄인 것이 같은 무게일까. 거꾸로 토큰을 많이 써서 더 많은 일을 시키는 게 성과일 수도 있다. 측정의 기준이 사람한테 맞춰져 있던 시대가 끝나가는데, 우리는 아직 사람 기준의 자를 들고 AI를 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가부터 다시 정하지 않으면 돈을 많이 들여도 성공하기 어렵다.

5%가 한 일은 일의 흐름 자체를 다시 그린 거였다. AI를 기존 업무 위에 얹은 게 아니라, 이 일을 처음부터 AI 중심으로 짠다면 어떻게 생겼을까를 물었다. 어떤 일을 사람이 하고 어떤 일을 에이전트가 할지 나누고, 그에 맞춰 프로세스를 새로 짜는 것. 도구가 출발점이 아니라 일의 설계가 출발점이다. 말은 쉬운데 이게 제일 어렵다. 기존 방식을 통째로 의심해야 하니까.

그래서 요즘 조직 얘기가 많이 나온다.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판단하고 예외를 처리하고, 실제 실행은 에이전트가 맡는 구조. 이게 IT 부서 얘기가 아니라 운영과 인사, COO와 CHRO의 영역으로 넘어왔다는 점이 눈에 띈다. CTO와 CHRO를 합치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한다. 일을 AI로 다시 짜려면 기술도 알아야 하고 사람과 조직도 알아야 하니까.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기술과 인사를 둘 다 깊이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된다. 기술 출신이 인사를 배워야 하나, 아니면 현업 사람이 기술을 배워야 하나. 처음엔 일을 가장 잘 아는 현업 사람이 기술을 조금 익히는 쪽이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의심이 든다. 에이전트를 어디에 배치하고, 어디까지 권한을 주고, 어떻게 통제할지를 고민하는 건 생각보다 깊은 기술 감각을 요구한다. 사람만 다루던 자리에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일꾼이 들어온 지금은, 오히려 기술을 아는 사람이 사람과 조직까지 끌어안는 편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리지만, 에이전트라는 낯선 변수는 기술 쪽 사람이 먼저 다룰 줄 아니까.

나도 어느 쪽이 맞는지 결론을 못 내렸다. 다만 합쳐야 할 게 직책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술과 사람 중 하나를 아는 사람이 나머지 절반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그걸 먼저 푸는 쪽이 앞서갈 것 같다.

돌아보면 늘 같은 문제다. 병목은 기술이 아니다. 일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사람과 조직을, 이제는 에이전트까지 함께 움직이는 것. 그게 늘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에이전트의 시대가 와도 이 부분은 우리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오늘은 결론 대신 몇 가지를 같이 생각해보고 싶다. 지금 우리 회사가 AI로 하는 일은 어제 하던 걸 빠르게 하는 것인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성과로 재고 있나. 줄어든 시간인가, 벌어온 돈인가, 아니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다른 무엇인가. 사람과 에이전트가 함께 일하는 조직은 우리 중 누가 설계할 수 있나.

답을 다 알진 못하지만, 이런 질문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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