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자마자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재작년과 작년 두 차례 커리어 조언을 해주었던 지인의 따님이 유명 대기업 해외마케팅 부서에 신입공채로 합격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온 것이다.

처음 아버지로부터 부탁을 받았을 때 하고 싶은 일, 어떤 경험을 쌓고 준비해 왔는지, 무엇이 고민인지를 메일로 적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내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먼저 생각을 많이 해보고 질문을 준비해와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사자가 별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는 좋은 이야기를 들어봤자 일반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놓고 나는 며칠 만에 연락이 올까 궁금해한다. 대부분은 2-3일 안에 연락이 온다.

신기하게도 메일 첫 몇 줄만 봐도 이 친구는 잘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누군가가 내게 메일을 보내와서 뭔가를 물어보거나 요청하는 경우, 얼굴을 보기 전에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느껴진다.

인사와 소개, 왜 연락을 했는지, 자신의 상황이 어떠하고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를 써오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용과 형식, 느낌에서 차이가 있는데,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공통된 패턴을 보인다. 그런 메일을 읽는 데는 1분도 안 걸리는데 읽고 나면, '똘똘한 친구이군,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 학생의 경우도 그랬다. 학력, 주요 경험(경력), 주요 성과, 자신이 가진 기술, 다양한 수상 및 대회 경험을 잘 설명했다. 자신이 희망하는 커리어 방향과 현재 자신의 여러 옵션과 관련 정보도 적어놓았다. 그리고 이 여러 기회 중에 어떤 기회가 자신에게 가장 맞을지, 장기적 비전은 어떨 것 같은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관심 있는 일의 방향은 꽤 명확했는데, 당시의 기회들이 여러 업종의 다른 일이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학생의 수준에 감명받고 좀 더 도와주고 싶어져서, 이력서도 피드백 해줄 테니 보내보라고 했다. 주제를 하나 주고 에세이도 하나 써서 보내보라고 했다. 생각의 깊이와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까지 보고 싶었다.

일주일쯤 지나서 이력서와 에세이가 도착했다. 학생 수준에서 놀랄 정도로 잘 썼는데 그래도 해 줄 이야기가 있어서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해서 피드백을 달아주었다. 내가 궁금했던 상황, why에 대해 질문하고, 추가/삭제/조정할 부분을 단어, 표현, 구조 면에서 써 주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이렇게 주고받으면서 여러 번 고쳐야 한다. 하지만 이 친구는 한 번 피드백을 보낸 후에 본인이 수정해서 여러 회사에 지원했고, 1년 전 세계적인 글로벌 회사에 인턴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이제 한국 유명 대기업에 정사원으로 합격한 것이었다. 내 딸과 동갑이라 더 애착이 갔는데 정말 잘 되었다. ‘역시 잘될 사람은 잘 된다니까’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다들 일을 못하는 사람보다는 잘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뭘까. 진행이 잘 되고 원하는 성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차이에 대해 물을 때 나는 이런 예를 들어서 설명해준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그 상대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상황 정보와 의도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상대가 뭘 해 주면 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잘 못하는 사람은 수수께끼를 풀듯 부분 부분 정보를 조각내서 준다. 상대가 그 정보를 파악하기 힘들거나 이해가 안 되어 다시 묻게 하고, 그걸 다시 설명하면서 왔다 갔다 하느라 진척이 늦다. 전체를 고려해서 일하기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한 번 보내고 상대방이 한 번 답하면 끝날 일을, 못하는 사람은 30번을 핑퐁하며 짧은 두세 줄 이메일을 수십 개씩 보내고 받으며 2-3주를 낭비한다. 운이 좋아서 상대방이 일을 잘하는 경우엔 답답함을 참지 않고 필요한 걸 정리해서 달라고 하고 그걸 보내면 끝이 난다. 그렇지 않고 비슷한 사람끼리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일하면 일이 끝나질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상대가 이해하기 어렵게, 해독해야 알 수 있는 수준으로 장황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정보를 보내는 사람의 머리에서 정리가 덜 된 상태로 보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상대가 에너지를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되게, 머릿속에 가장 쉽게 인식될 수 있게 구조로 구성해서 넣어줘야 빨리 이해하고 내가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다. 특히 상대가 고객일 경우,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먹여주다시피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객도 늘 자기네 조직의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니까.

고객이든 파트너든 동료든, 상대방이 최소한의 노력과 집중력을 들이고도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일 잘하는 것의 큰 부분이 아닐까. 제품을 만들 때든, 행사를 준비할 때든, 그다음 단계를 예상하고 몇 수 미리 대비해서 해 놓고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고 말하면 상대가 고마워한다.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른 것 아니냐며 왜 특정 방식으로 해야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동의한다. 많은 경우, 특정 방식으로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도 해 봐야 한다.

하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얼마의 시간 안에 어떻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어느 정도의 범위는 있다. 혼자서 5배 느리게, 5배 부족한 수준의 결과를 낸다면 그건 다양성을 이해해 달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닌가.

운동 선수들, 아티스트들을 봐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수준과 탁월한 사람이 하는 수준이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배울 수 있다면 많은 연구를 해서 잘하는 고수들이 하는 방식을 배워서 자기도 더 잘하게 되면 좋지 않을까.

특정 방식을 강요하지는 않더라도 더 나은 수준으로 전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어떤 경우는 최적의 방식이 알려져 있어서 그 방식을 능가하는 새로운 방식을 증명하기 전에는 그 방식을 따르는 것이 나은 경우도 많다.

이제 사람과 일하는 것만큼이나 AI 동료와 일하게 될 세상이다. AI에게 한 줄 설명을 주고 “네가 다 알아서 잘해봐” 하고서 추가 질문 받고 또 답해주는 것을 스무 번 하는 것보다, AI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미리 알면 도움될 상황, 정보, 내가 원하는 것을 맥락(context)으로 상세하고 명확하게 알려주자. 그리고 어떻게 접근해서 어떤 답을 내 달라는 것까지 헷갈리지 않게 구조화해서 요청하자. 그러면 AI와의 일이 더 빨리 더 나은 품질로 처리된다.

사람과 하든 AI와 하든, 일을 잘하는 사람의 비결은 단순하다.

자기가 먼저 고민을 더 한다. 중간 과정을 명확히 한다. 상대가 덜 힘들게 한다.

그렇게 전체의 성과 수준을 높인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 잘하는 사람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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